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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법과 상식

사직구장의 "아 주라!"를 부르는 파울볼 (또는 홈런볼), 누구의 소유일까요?!

by Orothy 2023.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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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8일부터 개최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문에 올해는 야구의 열기가 예년보다 조금 일찍 팬들을 찾아올 것으로 보입니다. 야구장을 찾는 묘미 중 하나는 이따금씩 관중석으로 날아드는 파울볼이나 홈런볼을 잡아 기념으로 간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관중들이 이처럼 파울볼이나 홈런볼을 집으로 가져가도 되는 것인지, 가져가도 된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한 번 파헤쳐보겠습니다.

 

<목차>
1. 사직야구장의 추억 - "아 주라!"
2. 역사로 알아보는 관중석으로 날아든 공의 소유권
3. 관중석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관중의 소유가 아니다
    (1) 한국 프로야구 공인구의 역사
    (2) 공인구 단일화를 반영한 공인구 공급 관련 규정
    (3) 그럼 경기 중의 경기사용구 소유권은 누구에게?
4. 관중석으로 넘어간 공이 관중의 소유가 되는 법적 근거
    (1) 구단의 소유권 포기 및 무주물의 선점 논리
    (2) 구단의 경기사용구 증여 논리
    (3) 경기 관람계약에 포함된 관중석으로 넘어간 공에 대한 소유권 양도계약 논리
5. 즐거운 2023년 야구 시즌을 기대하며

 

1. 사직야구장의 추억 - "아 주라!"

저는 하필 롯데가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1992년에 처음으로 야구를 제대로 접하고 롯데 팬이 된 부산 출신 갈매기입니다. 그 당시 롯데와 빙그레의 한국시리즈 기간이 시험기간이랑 겹쳐서 TV 시청이 금지되는 바람에 방에서 몰래 라디오로 경기 중계를 전해 듣기도 했는데, 그래도 박정태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으러 2루 베이스를 밟기 직전 겅중겅중 뛰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한 것을 보면, 다행히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전에 시험이 끝났던 것 같습니다. 이때만 해도 저는 롯데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도록 희망 고문을 당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1992년에는 야구를 몰랐더라면 하는 바람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하긴, 1992년에 부산에서 야구 안 봤다면 간첩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환경이긴 했습니다.

 

그 해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인생을 통틀어 야구장을 가장 여러 번 갔던 것 같은데, 그때 처음으로 사직구장의 유명한 "아 주라!" 문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시는 것처럼 사직구장에는 어른인 관중이 파울볼을 잡으면 그 공을 근처에 있는 어린이에게 주라는 의미로 다른 관중들이 "아 주라!"를 외치는 아름다운(?) 문화가 전통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그 문화의 수혜자가 된 적이 없었지만 간혹 파울볼을 잡은 어른들이 "아 주라!" 콜을 듣고 근처의 어린이 관중에게 공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파울볼이든, 홈런볼이든, 야수가 실책으로 잘못 던진 공이든, 인정 2루타가 되는 그라운드에 바운드된 공이든, 관중석으로 날아든 공을 잡은 관중이 이를 가지거나, 근처의 다른 아이에게 내어주거나, 경매에 올려서 팔려면 그 공이 이를 잡은 관중의 것, 즉 그의 소유여야 가능합니다. 농구, 축구, 배구와 같은 다른 구기 스포츠의 경우에는 관중석으로 공이 날아들더라도 이를 회수하여 다시 경기에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유독 야구의 경우에만 관중석으로 날아든 공을 관중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이처럼 관중석으로 날아든 야구공을 관중이 자신의 물건처럼 갖거나 처분할 수 있는 이유가 늘 궁금하였는데, 이번 글에서 그 이유를 한 번 파헤쳐보겠습니다.

 

2. 역사로 알아보는 관중석으로 날아든 공의 소유권

관중들이 관중석으로 날아든 공을 처음부터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초기였던 1921년만 해도 뉴욕 자이언츠는 31살의 사업가 Rueben Berman이라는 사람이 파울볼을 돌려주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를 경기장에서 쫓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1922년 6월 18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기를 경기장 배관을 타고 들어와 도둑 관람하던 11살의 어린 소년이던 Robert Cotter가 파울볼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절도죄로 구금되었다가 다음날 아침 판사가 소년을 풀어주라고 명령하였던 사건이 소년의 엄마를 통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들이 파울볼과 관련한 정책을 바꾸게 되었고 그러한 정책 변경이 오늘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Robert Cotter 뉴스
출처: The Philadelphia Inquirer - 노년이 된 Robert Cotter의 업적(?)을 기리는 뉴스

 

파울볼보다 좀 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은 홈런볼입니다. 홈런볼은 해당 홈런의 역사적인 가치에 따라 구단이 보유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고, 경매에 올려서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경제적인 가치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구단들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홈런볼을 회수하기 위해 홈런을 친 선수와 사진을 촬영할 기회나, 사인볼, 사인배트 등 기념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홈런볼을 습득한 관중을 회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엽이 은퇴경기에서 친 467호 홈런볼이나 이대호의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홈런볼과 같이 언론에서 대서특필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홈런볼의 경우에는 구단의 회수 노력을 뿌리치고 관중이 소유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어쨌든 구단들이 관중들이 잡은 홈런볼에 대해 구단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공을 내어줄 것을 회유한다는 점에서 홈런볼은 이를 잡은 관중의 소유라는 전제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 관중석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관중의 소유가 아니다

사실 메이저리그든, KBO리그든 야구공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해서 딱히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만, 관중석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관중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누구의 소유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1) 한국 프로야구 공인구의 역사

2015년도까지만 해도 공인구를 공급하는 업체는 단일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2013년 KBO의 심사를 통과한 공인구업체는 빅라인스포츠·스카이라인·맥스·하드스포츠 등 네 곳이었으며, 각 구단은 임의로 공인구 업체를 선택하여 야구공을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공인구 구매 체계였다면, 야구경기에서 사용하는 공인구의 소유권이 각 구단이었다는 점에 큰 의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업체에서 공을 만들다 보니 구단별로 사용하는 공의 품질이 서로 다르다는 지적이 있어왔고, 결정적으로 타고투저가 극심했던 2014년 공인구를 달리 사용하는 구단별로 각종 타격 지표가 크게 갈리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KBO는 경기의 공정성 확보와 국제 대회에서의 경쟁력 강화 명목으로 모든 프로야구 경기에 사용되는 공을 단일구로 통일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KBO는 2016년~2022년까지 스카이라인스포츠를 공인구 공급업체로 선정하였으며, 같은 업체를 2023년~2025년 공인구 공급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였습니다.

 

(2) 공인구 단일화를 반영한 공인구 공급 관련 규정

이러한 정책 변화를 반영하여 KBO 규약 중 'KBO 경기사용구 규정'과 '2022년 KBO 리그 규정'은 한국야구위원회(Korea Baseball Organization, KBO)가 공인구를 구입하여 각 구단에 공급하고, 이를 각 구단이 지정한 경기사용구 담당자로 하여금 관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경기사용구 관련 규정
출처: KBO 홈페이지 - 경기사용구 관련 규정

 

이러한 경기사용구 관련 규정을 보면 경기사용구를 1차적으로 구입하는 것은 KBO이고, 이렇게 구매한 경기사용구를 KBO가 각 구단에 '공급'하며, 각 구단은 KBO로부터 공급받은 경기사용구를 '관리'만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므로, 경기사용구의 소유권이 KBO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그럼 경기 중의 경기사용구 소유권은 누구에게?

그런데 KBO 홈페이지에 게재된 칼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KBO는 2주에 10박스씩(1박스: 120개), 1년간 180박스의 공을 구단으로 발송한다고 하므로 1년에 각 구단에 21,600개씩(=120개 x 180박스), 10개 구단 합하여 216,000개를 공급하였습니다. KBO 공인구의 개당 가격은 2015년 5,750원이었다고 하고, 지금 KBO 온라인 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는 공인구 가격은 17,000원인 점을 감안하여 현재 공인구 가격을 대략 10,000원 정도로 본다면, KBO는 시즌당 경기사용구 구입 비용으로 매년 21.6억 원을 지출하여야 한다는 계산이 됩니다.

 

그런데 KBO 같은 사단법인이 자체 예산으로 이 정도 비용을 들여 10개 구단에게 경기사용구를 공급한다는 것은 아무리 경기의 공정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경제적인 실질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경기사용구 구매를 2015년까지는 각 구단이 자체 예산으로 처리하다가, 이듬해부터 갑자기 KBO가 오로지 자체 예산으로만 조달하여 각 구단에 공급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러므로 (KBO나 각 구단 담당자에게 문의하여 확실하게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만) KBO가 공정성을 위해 직접 단일 업체를 상대로 경기사용구를 구입하기는 하지만 이는 각 구단의 위임을 받은 일종의 위탁 구매이고, 그 구입 예산은 각 구단이 KBO에 납부하는 회비에 녹아들어 가 있으며, KBO는 이와 같이 구입한 경기사용구의 소유권을 시즌 전체에 걸쳐 분할하여 각 구단에 양도하고, 다만 공정성을 위해 그 관리를 야구 규약 등을 통해 엄격하게 하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논리에 따라 경기 중의 경기사용구는 구단의 소유라는 전제 하에 관중석으로 넘어간 공이 관중의 소유가 되는 법적 근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경기사용구 구매의 흐름을 잘 아시는 분이 계시면, 공개가 가능한 범위에서 정보를 공유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4. 관중석으로 넘어간 공이 관중의 소유가 되는 법적 근거

관중석으로 넘어간 공은 관중의 소유가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놀다가 그 공이 다른 집 담장을 넘어갔다고 해서 곧바로 그 공이 담장 너머의 집주인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닌 만큼) 만에 하나 야구공의 소유권에 대해 관중과 구단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관중이 그 공을 소유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어떤 논리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관중의 권리 방어의 성공 여부도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 구단의 소유권 포기 및 무주물의 선점 논리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논리는 야구공이 관중석 펜스를 넘어가는 순간 구단이 야구공의 소유권을 포기하였고, 이로 인하여 무주물이 된 야구공을 관중이 소유의 의사로 점유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민법
제252조(무주물의 귀속) ①무주의 동산을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로 구성할 경우, 만약 관중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단의 직원이 즉시 파울볼이나 홈런볼을 습득한 관중에게 야구공의 반환을 요구하는 등 야구공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에도 관중이 유효하게 무주물을 습득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점이 있으므로, 야구공을 습득한 관중의 권리를 보호하기에는 다소 미흡하게 느껴지는 논리입니다.

 

(2) 구단의 경기사용구 증여 논리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논리는 야구공이 관중석 펜스를 넘어가는 순간 구단이 야구공의 소유권을 이를 습득한 관중에게 증여하였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민법은 서면에 의하지 않는 증여의 경우에는 각 당사자가 이를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증여 논리에 따를 경우, 야구경기 입장권 뒷면에 있는 약관에 구단이 파울볼이나 홈런볼을 습득한 관중에게 이를 증여한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는 이상, 이론적으로 구단이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라는 이유로 증여를 해제하고 파울볼이나 홈런볼의 반환을 구할 경우에는 관중 입장에서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민법
제555조(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와 해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

 

(3) 경기 관람계약에 포함된 관중석으로 넘어간 공에 대한 소유권 양도계약 논리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논리는 경기 중 관중석으로 넘어간 야구공에 대한 소유권은 이를 습득한 관중에게 양도하기로 하는 묵시적인 계약이 구단과 관중 사이의 경기 관람계약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관중이 구단에게 납부한 입장료에는 경기 중 당연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파울볼이나 홈런볼에 대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경기 관람계약에는 특정 좌석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권리 외에도 관람석으로 넘어간 야구공을 양도받을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으며, 관중이 습득한 파울볼이나 홈런볼에 대해서 구단이 즉시 또는 사후적으로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계약 위반을 구성하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앞서 두 논리의 약점을 극복하여 관중의 권리를 좀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논리에 따를 경우, 각 구단이 이제부터 파울볼이나 홈런볼은 구단의 소유이니 이를 습득한 관중은 반드시 이를 구단 측에 반환하여야 한다는 정책, 즉 새로운 이용약관을 발표하는 방법으로 관중의 파울볼 습득을 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파울볼/홈런볼과 관련한 유구한 역사를 고려할 때,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고 이렇게까지 할 구단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5. 즐거운 2023년 야구 시즌을 기대하며

올해에는 3월에 개막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 나름 굵직한 야구 이벤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년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바람의 손자' 이정후의 마지막 시즌이기도 하고요. 코로나 시절을 거치면서 야구의 인기가 예전만큼 못한 것 같은데, 이번 시즌 여러 가지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는 만큼 팬들의 발걸음을 야구장으로 향하게 할 만한 명경기들이 많이 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중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파울볼, 기왕이면 각자 응원하는 팀 타자들의 홈런볼도 많이 양산되면 좋겠고요. 모두들 즐겁고 안전한 관람 하시기 바랍니다!

 

※ 본 포스팅에 포함된 정보는 참고자료일 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 포스팅의 내용이 모든 유형의 사실관계나 법률분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며,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의 권리구제는 분쟁 당사자 각자의 책임으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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