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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법과 상식

'더 글로리' 명장면 문동은, 하도영의 바둑 대국은 도박죄일까?!

by Orothy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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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작 넥플릭스의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역)과 고교 시절 문동은을 괴롭혔던 일진의 남편 하도영(정성일 역)이 기원에서 펼치는 바둑 대국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돈을 걸고 노름하는 행위, 그리고 일시오락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가 제시하는 판단기준에 비추어 살펴보겠습니다.

 

※ 참고로 포스팅이 저품질에 걸릴 것이 우려되어, 영어로 betting을 의미하는 단어는 최소한으로 사용하고자 하며, 부득이하게 사용하여야 하는 부분에서는 자체 검열해서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장안의 화제작, 넷플릭스 '더 글로리'
2. 작가 김은숙이 극찬한 문동은, 하도영의 바둑 대국 장면
3. 돈을 걸고 두는 바둑, 법적으로 문제없을까?
4. 형법상 처벌되는 행위
    (1) 형법의 규정 및 대법원의 입장
    (2) '더 글로리' 바둑 대국의 경우에는?
5. 처벌되는 행위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처벌되지 않을 수 있다?? 일시오락이라면..
    (1) 형법의 규정 및 대법원의 입장
    (2) '더 글로리' 바둑 대국의 경우에는?
6. '더 글로리', 강추합니다!

 

1. 장안의 화제작, 넷플릭스 '더 글로리'

더 글로리 시청시간
출처: 나무위키 - 더 글로리 시청시간

 

여러모로 녹록지 않은 경제 상황 때문에 드라마·영화 제작사들이 꽤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지난 연말 드라마 '더 글로리'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더 글로리'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복수극이며, 고등학교 시절 지독한 학교 폭력을 당한 문동은이라는 여자가 온생을 걸고 복수를 완성해 가는 이야기인데, 극 여기저기서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가해자들에게 일갈하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동은의 입을 빌려 전하는 장면들이 많은 이들에게 사이다 같은 카타르시스와 통쾌함을 안겨주는 것이 흥행의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더 글로리'는 1월 11일 기준으로 넷플릭스 비영어권 TV부문 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누적 시청시간은 무려 8,248만 시간에 달한다고 합니다.

 

2. 작가 김은숙이 극찬한 문동은, 하도영의 바둑 대국 장면

'더 글로리'에는 여러 가지 명장면이 나오지만, 그중에서 '더 글로리'의 작가 김은숙도 극찬하는 장면이 바로 문동은과 하도영과 기원에서 펼치는 바둑 대국 장면입니다. 이 장면의 마지막에 문동은이 "좋죠. ○박"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김은숙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마지막 대사를 위해 바둑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인 것이며, 문동은이 하도영을 기원 입구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처음 편집실에서 모니터링했을 때 비명을 질렀을 정도로 잘 나와서 크게 만족스러웠다고 합니다.

&#39;더 글로리&#39; 바둑 대국 장면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 - '더 글로리' 바둑 대국 장면

 

배우들의 비하인드 코멘터리에 따르면 바둑 대국 장면 신을 촬영하는데 정말 오래 걸렸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대국을 치르는 문동은과 하도영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긴장감이 안방까지 가감 없이 전달될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장면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이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이 장면을 여러 번 다시 돌려봤는데, 볼 때마다 작가의 각본,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촬영 스태프의 노력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최고의 장면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돈을 걸고 두는 바둑, 법적으로 문제없을까?

문동은과 하도영이 대국을 벌이는 기원에서는 돈을 걸고 바둑을 둘 때는 판당 2만 원을 걸고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도영은 문동은과의 첫 대국에서 패배 후 하도영으로부터 2만 원을 건네받은 문동은이 기원을 뜨려고 하자 판당 5만 원 대국을 제안하게 됩니다. 그러자 문동은은 "그건 ○박인데" 라고 되묻습니다. 그 이후 기원에서 벌어진 일들은 극에서 나오지 않지만, 기원에서 나선 이후 전환된 장면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이 높아진 판돈을 놓고 대국을 한 번 더 벌였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판당 2만 원으로 하면 괜찮고, 판당 5만 원으로 하는 경우에는 형사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형법상 처벌되는 돈을 걸고 노름을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과연 돈을 걸고 바둑을 두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인지, 그리고 형법이 어떠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4. 형법상 처벌되는 행위

(1) 형법의 규정 및 대법원의 입장

형법은 돈을 걸고 노름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처벌 규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제246조
○박을 한 사람은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② 상습으로 제1항의 죄를 범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걸 도, 노름 박 두 글자로 이루어진 위 행위에 대하여 대법원은 그것이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하여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연'이란 주관적으로 '당사자에 있어서 확실히 예견 또는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는 사실에 관하여 승패를 결정하는 것'을 말하고, 객관적으로 불확실할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며, 당사자의 능력이 승패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다소라도 우연성의 사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때에는 위 형법의 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하면서, 피고인들이 각자 핸디캡을 정하고 홀마다 또는 9홀마다 별도의 돈을 걸고 골프를 한 행위가 위 죄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6도736 판결).

 

(2) '더 글로리' 바둑 대국의 경우에는?

바둑도 대국 당사자의 기력만으로는 그 결과를 100%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골프에서 기량에 따라 핸디캡을 정하는 것처럼 바둑에서도 기력에 따라 어느 일방이 몇 점을 먼저 놓거나 집을 양보하는 등의 핸디캡을 정하는 것이 가능하고, 노름으로 바둑을 둬서 번 돈을 정당한 근로에 의한 재물의 취득이라고 보는 것은 사회통념과 거리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거는 돈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돈을 걸고 바둑을 두는 행위는 위 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더 글로리' 대국 장면의 경우, 문동은이 하도영에 비하여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문동은은 서점을 따라다니면서 하도영이 보는 바둑서적의 수준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도영의 기력도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고 대국을 치러 하도영의 돈을 받아낸 것이니, 이는 사실상 처음부터 승패가 정해진 승부라서 노름으로 볼 수는 없고 오히려 문동은이 하도영의 돈을 편취한 것이며 하도영이 피해자인 것 아니냐 라는 논리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이른바 ○기○박에 있어서와 같이 당사자 일방이 카메라를 몰래 설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승패의 수를 지배하는 경우에는 우연성이 결여되어 ○기죄만 성립하고 ○박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도9330 판결).

 

하지만 기원에서 대국을 치르기 전까지 한 번도 하도영과 바둑을 둬 본 적이 없는 문동은이 하도영이 읽고 있는 책만으로 하도영의 기력을 완벽하게 파악하였다고 볼 수는 없고, 두 사람 사이의 기력 차이가 현저하더라도 문동은이 질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며, 문동은으로서는 만에 하나 첫 판에서 바둑에서 지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플랜 B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두 사람 사이의 대국이 승패가 100% 결정된 대국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일말의 우연이라도 개입될 여지가 있었던 이상, 위 대국은 ○기라기보다는 ○박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5. 처벌되는 행위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처벌되지 않을 수 있다?? 일시오락이라면..

(1) 형법의 규정 및 대법원의 입장

앞서 소개한 것처럼 형법 제246조 제1항은 단서 조항을 마련하여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하여 대법원은 '일시 오락 정도에 불과한 ○박은 그 재물의 경제적 가치가 근소하여 건전한 근로의식을 침해하지 않을 정도이므로 건전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없는 정도의 단순한 오락에 그치는 경미한 행위에 불과하고, 일반 서민대중이 여가를 이용하여 평소의 심신의 긴장을 해소하는 오락은 이를 인정함이 국가정책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허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도6351 판결).

 

법원이 이러한 일시오락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기준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참여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참여한 사람들이 가족 관계에 있거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이웃이라는 사정은 일시오락으로 인정하는 방향(즉, 처벌하지 않는 방향)으로 참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판돈의 많고 적음: 판돈이 적을수록 일시오락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고, 판돈의 크기가 10만 원 미만이라면 대체로 일시오락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3. 소요 시간: 그 시간이 짧을수록 일시오락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고, 1시간 이내라면 대체로 일시오락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4. 참여한 사람들의 경제적 능력: 판돈이 참여한 사람들의 경제적 능력에 비해 많은지 여부도 고려 요소입니다. 판돈의 크기가 10만 원 미만이라도 예컨대 한 달 월급이 수십만 원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 참여한 경우에는 일시오락이 아닌 것으로 평가될 위험이 높아질 것입니다.
  5. 돈을 걸었던 이유: 계획적으로 노름을 하려고 모였던 경우에는 일시오락에 해당하기 어렵고, 우연히 만난 기회에 유흥 목적으로 시작한 경우에는 일시오락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참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6. 숨기려는 움직임: 노름이 이루어진 장소가 공개된 장소로서 그러한 행위를 할 목적으로 특별히 만든 장소(예컨대 하우스)도 아니고, 참여자들이 적발되었을 때 진행되고 있는 판을 적극적으로 숨기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은 경우에는 일시오락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참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7. 전과: 관련 전과가 없거나 적을수록 일시오락으로 인정되는 방향으로 참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더 글로리' 바둑 대국의 경우에는?

결국 거는 돈이 2만 원이냐, 5만 원이냐 라는 절대적인 기준에 의하여 일시오락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일시오락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입니다.

 

'더 글로리' 바둑 대국에서 2만 원 대국 1회, 5만 원 대국 1회를 둔 것을 가정하는 경우, ① 판돈은 최대 14만 원(각자 7만 원 x 2명)으로서 10만 원 내외인 점, ② 소요 시간은 다소 길었겠지만 2회에 그쳤기 때문에 횟수가 많다고 볼 수 없는 점(다른 유형의 노름에서 소요 시간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1회당 소요 시간이 짧기 때문임), ③ 두 사람의 경제적 능력이나 직업(한 사람은 건설사 대표, 다른 한 사람은 초등학교 선생)을 고려할 때 14만 원 정도면 푼돈이라고 할 수 있는 점, ④ 두 사람 모두 걸린 돈보다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대국에 임한 점, ⑤ 기원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대국이 이루어진 점, ⑥ 두 사람 모두 전과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문동은과 하도영의 바둑 대국은 ○박죄를 구성하지만, 일시오락에 해당하여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뭐, 그런데 문동은에게는 이게 어느 쪽에 해당하든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다 쓰고 나니까 이렇게까지 분석할 일이었나 싶은 생각도 조금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

 

6. '더 글로리', 강추합니다!

너무너무 재미있게 드라마를 본 나머지, 제가 마음이 들었던 장면에 대한 포스팅까지 하게 만들고 만 '더 글로리'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작가의 스토리, 배우들의 열연, 촬영 스태프의 노력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스릴러물입니다. 학교폭력이나 복수극이라는 소재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주말 하루를 비워두고 쭈욱 시청해 보시는 것을 강력 추천드립니다. 이처럼 드라마를 기다린 적이 참 오랜만인 것 같은데, 2023년 3월에 일정이 공개될 시즌2에도 포스팅할 만한 재미있는 글감들이 있기를 기대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 본 포스팅에 포함된 정보는 참고자료일 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 포스팅의 내용이 모든 유형의 사실관계나 법률분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며,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의 권리구제는 분쟁 당사자 각자의 책임으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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